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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주의자 주부의 하루

가혹한 가을의 시작

by 엄마 도토리 2024.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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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수속하는 날

 

지난 포스팅에 이어..

잔혹한 10월이라고 했던 이유는 제가 사고를 당한 다음 날 저희 남편도 사고를 당해 입원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사고였다면 좋았을 텐데 슬프게도 평생 안고 가야 하는 후유증이 있을 듯해요.

정말 얼마 전의 일이라 기술하기에도 아직은 심적 타격이 있네요.

그래도 이만하길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평소 같은 하루

모든 사고의 날(?)은 다 그런 걸까요? 말 그대로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근무가 취소되어 병원에서 재활을 마치고 쉬다가 아이 하원시간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이라 슬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쯤 남편에게  전화가 왔어요.

평소 외근을 나가는 일이 있을 때면 전화를 해서 수다 떠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받았던 전화였는데 남편 목소리가 뭔가 달랐어요.

첫마디가 너무 놀라지 말라며 안심시키는 이야기였는데, 오히려 그래서 큰 사고를 예감했어요.

(과거 몇 번의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눈을 다쳤는데 좀 크게 다쳤다고, 시력 손상은 기정사실이고 정도가 문제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라인더를 사용하던 중, 어떤 이유에서든 날이 깨지며 오른쪽 눈으로 날아왔다고 해요.

남편은 안경을 착용하고 있어 안경알이 파손되고 안구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이 시국에 병원은 갈 수 있을까

사실 다쳤다고,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을 때, 가장 걱정은 병원은 갈 수 있을까? 수술은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길어진 의정갈등으로 대학병원의 경우 신규는 거의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고, 의료진 이탈이 심해진 상태라고 들었기 때문에 걱정이 컸습니다.

 

 

 

혹시 사고가 났을 때

일단 당분간 가게를 열 수 없을 거라 짐작해, 주변 정리를 대충 해두고 문을 닫은 후 119에 전화를 했다고 해요.

남편의 경우엔 좌안에도 이슈가 있어 이전에 진료를 받았던 동아대병원에 가장 먼저 문의를 했지만 불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구급대원께서 인근 대학병원에 전화문의를 해서 인제대병원으로 가게 되었어요.

옆에 있던 지인은 바로 병원으로 가자고 했었다는데, 119에 전화했던 게 오히려 나았던 것 같아요.

병원을 가도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응급실에서 입원까지

응급실에서 초진을 받고 검사 후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바로 수술이 잡혔어요.

당일 오후에 갔는데 저녁에 바로 수술이 가능했다니 천운이었어요.

제 생각엔 남편의 나이가 젊고 시력손상뿐만 아니라 상실까지 염려되던 상황이라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나 싶어요.

어떤 이유에서건 당일 수술이 가능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직 많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갈 수가 없어 급하게 동생에게 아이를 맡기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수술 후 긴 밤

도착 후 얼마되지 않아 수술에 들어갔고, 수술시간에 대해 미리 문의하지 못해, 대략 1-2시간쯤을 예상했던 수술시간은 밤 12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어요. 얼마나 긴 시간이었던지... 대기실의 싸늘한 공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수술이 끝나고 바로 병실로 이동했는데, 전신마취의 영향으로 최소 4-6시간은 수면 금지, 취식 금지였어요.

마취약이 아직 남아있어 잘못하면 폐에 공기가 잘못 들어갈 수 있는데 그럴 경우 폐렴이 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고새 설명을 까먹어서 정확하지 않은 기억이니 참고만 해주세요)

너무 졸려서 옆에서 흔들어 깨워도 잠들려고 해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잠을 깰 수 있게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도, 다른 환자분들이 자는데 방해되는 상황이었고요.

다행히 앉을 수는 있어서 간호사분들께 부탁드려서 침대를 밖으로 빼서 저와 계속 이야기를 하며 잠을 참았어요.

새벽 4시경에야 간호사분께 확인받고 물을 마시고 잠에 들었고, 저는 아이를 챙겨야 해서 집에 다녀왔습니다.

  

 

 

 

여명

그날의 심란함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네요.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리해야 하던 엄마의 자리가 유난히 무거웠던 하루였어요.

당연히 남편도 저도 이전과 같을 수 없고, 일부의 포기와 체념 등.. 여러 가지의 변화를 짐작하고 있답니다.

우울할 수밖에 없을 남편이 포기하지 않고 애써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아기도토리라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그 말에 동감했어요. 그리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 남편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이전과 같을 수 없고, 당연히 그런 마음이 들 테지만 그래도 나는 너무 감사한다고, 비록 시력이 손상되었을지언정 자라는 아기도토리의 모습을 볼 수 있음에 너무나도 감사한다고. 그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이 마음은 지금도 같아요.

벌이가 줄 건, 내가 고생을 더 하건, 물론 힘들겠지만 그건 부수적인 것이고, 남편이 시력을 잃지 않고 아기 도토리가 자라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현재진행 중인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그때마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죠.

이렇게 부모가 되어감을, 아주 조금이지만 느껴봅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움을 떠올리며 그날의 먹먹한 마음을 견뎌봅니다.

어느 힘든 날, 그래도 버텨야하는 육아동지들!

오늘도 힘내보아요!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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